사유모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장 깊은 영역

AI에게는 'Think Mode'를 켜주면서, 정작 우리는 생각마저 외주화하고 있습니다. AI는 연산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묻습니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 사유모드를 켜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AI 시대, 우리가 더욱 집중해야 할 고유함에 대하여


사유모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사유모드를 만든 조쉬킴(Josh Kim)입니다.

2022년 11월 ChatGPT가 세상에 나온 뒤, 인류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이토록 빨랐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매일이 새롭습니다. 저 역시 그 흐름을 지켜보다 2024년부터 AI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비개발자임에도 바이브코딩으로 직접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AI에 깊이 파고들수록, 그 변화를 따라잡으려 애쓸수록, 더 깊은 FOMO와 무력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몇 달간 그 흐름을 좇는 걸 멈췄습니다. 대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AI,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은 무엇인가.

오히려 AI와 이런 질문을 통해 대화를 참 많이 나눴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곳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LLM 서비스들을 가만히 보면, "더 깊이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합니다. 우리는 AI에게 더 깊이 생각하라고 기꺼이 'Thinking Mode'를 켜주고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 인간이 AI에게 'Thinking Mode'를 켜주며 더 깊어지는 동안, 우리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인 생각마저 점점 외주화하며, 스스로 로봇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유모드는 바로 그 작은 생각의 균열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번엔 뇌의 차례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기계에 넘기며 효율을 좇아온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증기기관은 근육을, 컴퓨터는 계산과 반복 작업을 대신했습니다. 매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우려가 따라왔지만, 인간은 그때마다 더 창의적이고 고차원적인 영역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AI는 결이 다릅니다. 이번에 넘보는 것은 인간의 마지막 영역, 뇌이기 때문입니다. 신경망(Neural Network)이라는 이름부터 인간의 뇌에서 영감을 받았고, 복잡한 문제를 여러 단계로 쪼개고, 다양한 해결 경로를 검토하며, 스스로 답을 점검하는 단계를 거쳐 정교한 결과를 내놓습니다.

이제 인간을 온전히 대체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토피아에 다다를까요. 만약 인간의 모든 영역을 AI가 대신하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요. 인간을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존재'로만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능과 효율마저 기계가 더 완벽하게 해낸다면,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능력과 효율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 아래서, 우리는 서로를 계층화하고, 결국 서로를 로봇처럼 취급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그 잣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생각과 사유는 다릅니다

여기서 저는 굳이 '생각' 대신 '사유'라는 말을 씁니다. 두 단어는 자주 섞여 쓰이지만, 분명히 다른 층위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말하는 생각이 대상을 분석하고 효율적인 답을 구하는 뇌의 작용이라면, 사유는 그 답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내면의 움직임입니다.

AI는 결국 이 연산적 생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은 고도화된 연산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유에 두 방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효율과 정답을 좇는 계산적 사유(rechnendes Denken)와, 의미와 본질을 묻는 숙고적 사유(besinnliches Denken). AI가 전자의 정점을 보여준다면, 인간에게 남은 자리는 바로 후자입니다.

AI는 연산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묻습니다.

"정답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를 되묻고, 그 모든 것을 내 삶에 비추어 다시 읽어내는 일.

그래서 이 사유모드를 영어로 옮길 때도, 저는 'Sayu Mode'라고 쓰려 합니다. 번역하기보다, 이 고유한 결을 그대로 소개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유모드를 켰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단단하게 믿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사유를 멈추지 않는 한, 인류에게 희망의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AI가 더 많은 것을 대신할수록,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알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더 결정적이 됩니다. 그래서 인간 고유의 영역은 사라지기는커녕 더 선명하고 소중해집니다.

'사유모드'라는 이름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AI 서비스가 더 깊은 결과를 위해 'Think Mode'를 켜듯, 우리도 우리만의 사유모드를 의식적으로 켜야 하지 않을까. AI를 거부하자는 게 아닙니다. AI 시대를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저부터 깊이 사유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 공간은 완성된 답을 전시하는 곳이 아닙니다. 제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 어떤 질문 앞에서 멈춰 섰는지를 정직하게 기록하는 곳입니다. 망설임도, 생각의 균열도, 아직 결론에 닿지 못한 사유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사유의 증거라고 믿습니다.


나부터, 그리고 당신과 함께

저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의 언어가 아니라 내 목소리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빠른 답보다 깊은 질문을 붙드는 사람으로. 이 뉴스레터는 그 믿음을 연습하는 작은 실험입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당신과 함께.

큰 변화의 파도 앞에 서는 일은 분명 두렵습니다. 하지만 서핑보드가 있다면, 우리는 그 파도를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서핑보드를 깎고 있습니다.

사유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있습니다.